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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으로서 경험한 일들을 에세이로 펴내 주목받은 조승리(39)가 첫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다산북스)으로 돌아왔다.
“보이지 않던 우리가 세상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 캄캄한 세상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놓는 것이 제 글쓰기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독자들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년에 출간된 그의 첫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17쇄를 찍었다. 소위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또 올해 출간된,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여행 이야기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역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그가 이번에 출간한 ‘나의 어린 어둠’은 네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주변 시각장애인들의 경험을 소설로 담아낼 생각을 한 것은 “시각장애인 동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를 읽고 ‘내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한 시각장애인도 있었다고 한다.
“많은 독자가 제 에세이를 읽고 나서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시각장애인이나 장애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해요. 사실 장애인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제 글을 읽고 나니까 인지하게 된 거죠. 이런 변화를 뿌듯하게 생각해요.”
연작소설은 실명을 앞둔 중학생이 겪는 첫사랑, 특수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 부모와의 충돌, 냉혹한 사회 앞에서의 좌절 등 “조승리들이 살았을 법한 성장통의 순간”을 펼쳐 보인다.
표제작인 ‘나의 어린 어둠’은 어머니의 농사를 도우면서 학교에 다니던 화자가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나빠져 방문한 병원에서 곧 시력을 잃게 된다는 통보를 받는 이야기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화자와 어머니가 느끼는 당혹감과 충격, 슬픔을 표현했다.
‘네가 없는 시작’은 중학생인 화자가 첫사랑인 남학생에게 시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어렵게 털어놓고 결별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내 안의 검은 새’는 하루하루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진학도 취업도 포기한 20대 초반 화자가 가족에게 눈총받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자들은 모두 조승리의 분신이다. 각 화자의 이야기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열다섯 살부터 시력을 차츰 잃어 전맹이 된 조승리와 닮았다.
조승리는 “수록작의 많은 부분이 자전적 이야기에요. 수필로 써놨던 내용을 소설로 다시 쓴 것도 있고, 경험한 일에 허구를 조금 섞어 수필과 소설의 경계 어디쯤에서 글을 썼어요”라고 설명했다.
책의 말미에는 소설집을 내게 된 과정과 소회를 담은 짧은 에세이 ‘소설가가 되었다’가 실려 있다. 책에 의하면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회사 경리였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경리라는 꿈은 스스로 최선이라고 생각한, 혹은 현실에 걸맞은 적절한 타협점이었다.
“만약 제가 시각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시각장애인은 운명이었을까. 작가는 운명이었을까. 어쩌면 둘은 하나로 묶인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 작가라는 소개가 낙인 같고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제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체성이고 수식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어요.”
접고 들어간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욕망이다. 야망이나 오기라고도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 작가가 아닌 대표작의 제목으로 기억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더 좋은 원고를 쓰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대표작은 아직 써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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