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삼(三)눈박이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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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5-19 00:02:30

‘외눈박이 나라의 두눈박이’ 우화를 아는가.

원작이 없어 자주 변형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다. 외눈박이들만이 있는 나라에 나타난 두눈박이가 장애인 취급을 받으며 차별과 핍박을 받다가 눈 하나를 뽑아 없앤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살펴보면 결론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외눈박이가 된 두눈박이를 다른 외눈박이들이 환영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눈 하나를 뽑은 상처가 징그럽다는 이유로 여전히 괴롭힘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두 결론 모두 핵심은 같다. 어떤 결론이든, 비정상적인 것은 외눈박이임에도 오히려 그들이 두눈박이를 탄압한다는 시각으로 쓰인 이야기다. 이 우화가 ‘정상과 비정상은 구분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은 잠깐 제쳐두는 것으로 하고, 기자는 이 이야기를 약간 비틀고 싶다.

우리는 삼(三)눈박이의 나라에 살고 있다. 두눈박이인 기자가 있는 이 땅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은 눈이 세 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돈이 아닌 다른 ‘인간적’ 가치를 추구할 줄 알고, 가부장제의 틀에서 벗어나 남성에게 붙잡혀 살지 않는 자유로운 여성의 삶을 꿈꿀 줄 알고, 키우기 부담스러운 자녀를 낳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 갈 줄 안다. 옛날의 낡은 질서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기준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만들어 가려 하는 이 땅의 사람들은 분명 ‘계몽의 눈’을 가진 삼눈박이들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삶, 남성이 여성을 책임지고 가정을 꾸리는 삶, 셀 수 없는 시간을 거쳐 내게 이어진 핏줄을 계속 후대로 전하려는 의지를 가진 삶을 바라는 두눈박이들은 더이상 이 땅에 없다. 이런 낡아빠진 생각을 하는 두눈박이들은 깨어 있는 삼눈박이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삼눈박이들은 두눈박이들에게 새로운 눈을 달아 주려 수십 년간 부단히 노력해 왔고, 그 결과 이젠 자신만의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삼눈박이들의 세상이 됐다.

이 땅의 삼눈박이들은 자신들이 얻은 세 번째 눈이 계몽의 증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 우월감을 바탕으로 두눈박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인간답고 따뜻한 삶이 무엇인지, 다른 이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음모론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 준다. 이를 위해 가끔은 두눈박이들을 법정에 세워 부모의 마음으로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기자는 최근 들어 ‘내가 망상장애 환자가 아닐까’ 하고 자주 의심한다. 계몽되어 눈이 세 개인 행복한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눈이 두 개 뿐인 기자에게는 자꾸만 절벽 앞의 낭떠러지가 보이고, 화창한 날 눈을 떠도 눈을 감은 것만 같다. 심지어는 투표 결과도 이상해 보이고, 다른 이웃 나라가 이 땅을 몰래 집어 삼키려는 것만 같다. 기자가 이런 ‘음모론적’ 망상을 하는 동안 삼눈박이들은 데이트를 즐기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며 자신만의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어지던 때 헌법재판소에 들러 본 사람이라면, 안국역 앞의 베이커리 카페를 기억할 것이다. 맑은 날 열린 창문으로 햇빛을 받으며 커피 향을 만끽하는 사람들 앞으로, 비장한 표정을 하고 태극기를 두른 ‘우스꽝스러운’ 두눈박이들이 지나다녔다.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전혀 달랐다. 계몽된 삼눈박이들은 ‘쓸 데 없는 것’에 시간을 쓰는 두눈박이들을 비웃었다.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롭고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려는 삼눈박이들에게 그들은 과거의 질서에 집착하는 바보들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좀비 영화 따위를 보면 외로운 주인공이 매일매일 생존자를 찾는 무전을 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제 대한민국의 몇 남지 않은 두눈박이들에게도 무전기가 필요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전을 칠 때는 좀비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무전의 내용이 들키면 계엄군보다 무서운 ‘삼눈박이 계몽군’이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하진 기자 arawav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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