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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경북도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을 휩쓴 대형 산불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의성 고운사를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재 33건이 전소 또는 반소되는 등 문화유산의 피해가 막심했다.
안동시도 12건의 지정유산이 불에 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화마 속에서 한 채의 고택도 잃지 않고 전부 지켜 낸 마을이 있어 화제다.
고택을 지켜 낸 사람들
15일 안동시 임하면 금소마을에 들어섰을 때 깊고 무거운 탄내가 코를 찔렀다. 뒷산 자락, 까맣게 탄 나무들과 누렇게 말라버린 대나무가 훤히 보였다. 집터만 남기고 완전히 전소된 주택도 있었다. 그날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 백년 고택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기둥 하나 대들보 하나 손상을 입지 않았다. 대형 화마로부터 고택을 온전히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이장님을 위시해 마을 주민이 하나되어 불길과 싸운 덕이었다.
“마을 사람들 먼저 안동 시내로 대피시키고 나서 이장님과 몇몇 마을 사람들이 남아 불과 싸우며 고택을 지켜냈다.”
최유리 ‘금양연화’ 운영팀장의 말이다. 싸움의 흔적인 듯 경함정 고택 담장 바로 뒤에는 불에 타다 만 나무들이 즐비했다.
‘금양연화’는 (사)국가무형문화재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회장 임방호)에서 출시한 안동 촌캉스 여행상품이다. 그리고 안동포는 유교 문화권인 안동 지역에서 여름옷과 상주 및 수의용으로 사랑받던 옷감이다. 원래는 안동에서 짠 삼베를 뜻하지만 지금은 안동에서 짰어도 금소마을 인증을 거친 것이라야 ‘안동포’ 브랜드를 달 수 있다.
안동포는 조선시대 임금님 진상품으로 뽑힐 만큼 귀한 물건이어서 서민은 생활 속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다. 그 시절 명품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값비싼 수의용 옷감으로 거래되고 있다.
금소마을 최고의 브랜드 ‘안동포’
안동시내에서 남동쪽으로 14㎞ 떨어진 금소리는 마을 전체가 무형문화재로 일년 내내 베 짜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곳이다.
예천임씨, 울진임씨 집성촌인 이곳에는 현재 200여 가구 3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베를 짜는 집은 40가구 남짓이다.
삼베의 원료인 대마는 물빠짐이 좋고 영양분이 적은 사질의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안동 금소리는 대마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좋은 삼베는 나쁜 대마에서 나온다. 상품 삼베가 되려면 대마의 잎도 줄기도 볼품없어야 한다.
과거 밭 가외에 떨어져 영양분을 독차지하며 튼실하게 자란 대마는 가치가 적어 머슴의 옷이 되었고, 대마밭 한가운데 비좁은 땅에서 다른 대마들과 경쟁하며 비죽하게 키만 늘린 대마는 양반의 옷이 되었다.
안동포는 삼찌기부터 상괴내기(염색)까지 총 13단계의 공정을 거쳐 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100번 이상 사람 손길이 간다. 워낙 일이 힘들다 보니 길쌈을 배우려는 사람이 적어 생산량도 적다. 1년에 15벌 정도만 생산되다 보니 가격도 만만찮다. 한 벌에 1000만 원을 호가한다고.
금소마을 길쌈 기술자의 평균 나이는 70대에 이른다. 자칫 안동포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뜻있는 젊은이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금소마을로 촌캉스 오세요”
금소마을은 작년 안동시에서 공모한 ‘살아 숨 쉬는 고택 사업’에 선정돼 안동 촌캉스 여행상품 ‘금양연화’를 출시한 바 있다.
금양연화는 금소의 옛 이름인 ‘금양’과 왕가위 감독의 멜로영화 ‘화양연화’(2000)를 합친 브랜드 명이다. 이 이름에는 금소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경험하길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금양연화 여행상품은 지난 한 해 국내 외 여행객에게 이색적인 로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널리 호평을 받았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안동포짜기 견학 △대마밭 투어 △고택 숙박 △봇도랑에서 다슬기 잡기 △막걸리 만들기 △금소생태공원 견학 등을 체험하며 촌캉스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한편 안동포짜기보존회는 15일 금소마을 브랜드데이 행사를 개최하고 인구감소 등 농어촌마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금소마을만의 자구책을 소개했다.
안동포짜기보존회관에서 진행된 1부 행사에서는 2024방콕타이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미국·일본·인도·슬로바키아 등에서 공식 초청을 받은 김지희·김서진 연출의 애니메이션 ‘삼베 러버 피라미’가 상영됐다.
영화는 금소마을 봇도랑에 살던 피라미가 마을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푸른 잎 대마가 고운 안동포로 태어나는 과정을 꼼꼼히 보여준다.
‘삼베러버 피라미’는 국가유산청 주관 2024 생생국가유산사업으로 진행된 ‘슬로패션 금소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작년 금소마을 찾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먼저 선보여 큰 찬사를 받았다. 이에 힘 입어 ‘살아 숨 쉬는 고택 만들기’ 방문객을 대상으로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금소마을에 장기 체류하면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김지희·김서진 감독은 “할머니들이 봇도랑에 발을 담그고 삼실과 삼베를 빠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봇도랑에 사는 피라미 눈에 삼실이 어떻게 보일까, 상상하며 내용을 엮어 나갔다. 피라미의 동선을 쫓다 보면 삼베 삼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인연이 금소와 연결되기를
2부 장소인 만세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안동포로 이음’이라는 주제로 특별한 길놀이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마을 풍물패의 신명 나는 연주 속에 단심줄놀이(길쌈놀이) 행렬이 길을 선도하면 안동 복주초등학교 학생들과 마을 주민이 안동포를 잡고 그 뒤를 따랐다. 더 많은 인연이 금소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된 퍼포먼스였다.
만세공원에 도착한 뒤에는 안동포짜기 보존회 임방호 회장의 사업 개막 선포가 있었다. 이어 나을 어르신들과 안동 복주초등학교 학생들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할머니들의 구성진 베틀가에 학생들은 촉촉한 감성의 ‘너의 의미’로 화답했다. 새로운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과 앞으로도 더욱 끈끈한 정을 나누며 동행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형 산불에서 복구 중인 만휴정 등 안동 동남권 지역 관광 활성화를 두고 각계각층이 협력을 다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또한 관광산업 주체들은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협업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에 불어닥친 큰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을 대외에 알렸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김관수 ‘길과 마을’ 대표는 “금소마을 브랜드데이는 금소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금소마을의 생활 인구가 된 사람들 모두가 협업해 만들어 가는 금소의, 금소가 낳은, 금소를 위한 브랜드다. 2025년 더 많은 이들이 안동과 금소마을을 방문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또 안동을 넘어 경북과 경남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해 안동포를 알리는 동시에 흥미로운 여행상품을 만들겠다”고 전했다.
한편 안동 촌캉스 금소마을 여행상품 금양연화는 △‘길과 마을’ 블로그 △여행플랫폼 피치바이피치 △신세계굳닷컴 등을 통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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