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06] 가세요,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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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19 06:25:00

“언니, 제사 지내는 거 힘들지 않아요?” 승연이 올케와 제기를 닦으며 물었다. “에이, 아가씨도 참, 뭐 남들 다 하는 건데요. 제 할 일이기도 하고.” “남의 집 제사가 왜 언니 할 일이야, 오빠 할 일이죠.”

올케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남편 할 일이 제 할 일이죠. 그리고 아가씨가 도와주시잖아요. 아버님이 좋아하셨다는 음식은 아가씨가 다 해 오시는데. 난 갈비찜이랑 사과감주, 아무리 맛있게 하려 해도 잘 안 되더라. 손맛이 있나 봐요.”

승연은 손맛이 아니라 한이 서려서 그렇다고 했다. 올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하게 승연을 바라봤다. 승연은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다과를 챙겨 갔다. 올케에게 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올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다가왔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속담은 위로가 아니라 교훈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식구들에게 반드시 말해야 했다.

“엄마, 오빠, 우리 이제 제사 그만하면 안 돼요?” 승연의 뜬금없는 질문에 어머니·오빠·올케는 당황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가씨가 힘드냐고 물어봐서 제 할 일이라고 했는데, 절대 힘들지 않아요. 제사라고 달랑 조부모님하고 아버님 제사 딱 세 번 하는데 그게 뭐 힘들다고 안 해요.” 올케는 자기가 힘들어서 승연한테 넋두리라도 한 줄 알까 봐 손사래 치며 말했다. 억울해서 울상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제사를 안 지내다니. 그럴 순 없지. 너 꼴랑 제사 음식 몇 개 해 오는 거 힘들어서 그러면 그만해도 돼. 갈수록 간소화하는데 그것도 힘들다면 어떡하니.” 승호가 어른스럽게 타일렀다. 자기 부인을 방어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머니 앞에선 제사에 대한 어떤 의견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승연은 오빠 입장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빠가 한 말에 대해선 반박해야 했다.

“올케언니가 왜 남의 제사를 지내요. 올케언니가 준비하는 거잖아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 제사를. 시아버지 사랑 받지도 못했는데 언니는 무슨 죄가 있다고 본 적 없는 시아버지께 사랑과 정성을 바쳐….”

어머니는 사과 한입 물다 말고 며느리를 쳐다봤다. 그건 그렇네. 얘, 시아버지 살아계셨으면 외며느리라고 혼자 사랑 독차지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제사만 지내는구나 내가 미안하다. 내 남편이니까 내가 지내는 게 맞는데. 어머니가 말을 마치자 승호와 올케가 서로 동시에 얼굴을 마주 봤다. 승호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머니 왜 이러세요. 우리가 제사 지내는 거 싫어하는 줄 알겠네. 승연이 너, 왜 남의 집에 분란 일으키냐.”

“오빠, 여기가 왜 남의 집이야, 내 집이지. 내 시댁이 남의 집인 거고.” 승연이 말하면서 남편 배준형을 쳐다봤다. 남편은 승연이 두 달에 한 번씩 지내는 시댁 제사가 지겨워서 비꼬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무 말 못 하고 앞에 놓인 사과감주를 벌컥 들이켰다. “제 생각에… 제사 그만했으면 해요.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서.”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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