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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는 탈옥수 매그위치가 어린 핍을 위협하며 자신 옆에 “더 무서운 젊은 남자”가 함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실은 혼자였지만, 마치 존재하는 듯한 허구의 인물을 ‘말’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이 젊은 남자가 핍의 심장과 간을 꺼내 먹을 수 있다고 협박하며, 핍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도록 공포를 조장한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실감나게 만드는 이 언술의 기술은 일종의 ‘복화술’이다. 그리고 그 복화술은 허구가 현실을 지배하는 효과를 낳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복화술이 느껴진다. 목소리는 하나인데, 뒤에서 울리는 메아리가 또 다른 목소리를 암시한다. 예컨대 모 유력 정치인이 특정 언론사의 광고주에게 지나는 말처럼 건넨 질문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사실 확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의 여운에는 ‘왜 그런 기사를 내보냈느냐’는 언론사를 향한 압박의 기운이 섞여 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질문은 정치적 중립을 가장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에서 누구를 향해 나온 것인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그 장면은 마치 매그위치가 자신의 입을 더럽히는 대신 “나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며 가상의 인물을 이용해 핍을 윽박지르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복화술은 작동한다. 예컨대 어떤 기자가 특정 권력자의 비리를 파헤친 기사를 썼다고 하자. 그것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기 전, 불확실한 이유로 해당 기자가 징계를 받거나 심지어 구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사법적 판단일까? 아니다. 그 처벌의 ‘이유’는 들리는 말이고, 실제로 작동하는 건 그 너머의 메시지다. “이런 기사 쓰지 마.” “이런 사람 건드리지 마.”
우리 사회의 복화술사들은 언어를 통해 두려움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자율적 순응을 유도한다. 심지어 그 공포의 진원지가 누구인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침묵한다. 그렇게 공포는 권위로, 권위는 다시 공포로 순환된다.
언론은 본디 권력자의 복화술을 들춰 내는 자리여야 한다. 공포의 목소리는 어린 핍을 윽박지를 수 있지만, 무대 밖에서 구경하는 관객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복화술의 수법이 드러나는 순간 무대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 웃음거리가 된 무대와 야유를 보내는 관객의 모습을 전달하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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