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의 청년은 더 이상 ‘미래의 주역’이라는 추상적 수사로 설명되기 어렵다. 국가통계연구원이 16일 발간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청년 세대의 현재를 ‘줄어들고, 흩어지며, 소진되는 세대’로 규정한다. 인구·가족·고용·정신건강·사회적 관계 전반에서 기존 정책의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 수치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청년(19~34세) 인구는 1,040만4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1%에 그쳤다. 청년 인구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20%선 붕괴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다. 인구 감소와 함께 삶의 형태 역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혼자 사는 청년 비율은 25.8%로, 2000년(6.7%) 대비 약 4배 증가했다.
결혼과 가족 형성은 더 이상 청년 삶의 기본 경로가 아니다. 30~34세 미혼율은 남성 74.7%, 여성 58.0%에 달했고, 25~29세에서는 남성 95.0%, 여성 89.2%가 미혼 상태였다. 이는 단순한 ‘결혼 지연’이 아니라, 결혼 자체가 삶의 기본 설계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거비 부담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결합되며 가족 형성은 선택이 아닌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용 지표의 개선도 삶의 안정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2024년 15~29세 실업률은 5.9%로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9.0%) 이후 하락했고, 30~34세 고용률도 장기적으로 개선 흐름을 보였다. 특히 여성 고용률은 2015년 59.6%에서 2024년 73.5%로 상승하며 성별 격차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보고서가 함께 제시한 핵심 지표는 ‘번아웃’이다. 2024년 청년의 번아웃 경험률은 32.2%로, 청년 10명 중 3명 이상이 학업·업무·취업 준비 과정에서 심각한 탈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여성(36.2%)과 25~29세(34.8%)에서 특히 높았다. 일자리는 늘었지만,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성과 압박 속에서 청년의 소진은 구조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신건강 지표는 더욱 뚜렷하다. 2024년 청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4명으로 전년 대비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모든 청년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상승했으며, 특히 19~24세에서 증가 폭이 컸다. ‘취업하면 나아진다’는 기존 통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회적 관계와 신뢰 역시 약화되고 있다. 2023년 기준 청년의 사회적 교류는 가족·친척보다 지인 중심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 ‘지인과의 교류가 없다’는 응답은 오히려 늘었다. 특히 30대에서는 여가를 혼자 보내는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며 관계 축소가 일상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사회에 대한 신뢰와 공정 인식도 낮다. 2024년 기준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끼는 청년은 절반 수준에 그쳤고,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7점으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렀다. ‘미래를 실현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증가했으며, 30~34세에서 가장 높았다. 이러한 인식은 자원봉사·기부·정치·사회 현안 참여 등 시민 참여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거와 안전 영역에서도 구조적 취약성이 확인됐다. 청년 가구의 주택 이외 거처 비율은 5.3%로 일반 가구의 두 배를 웃돌았고, 수도권에서 특히 높았다. 비수도권 청년의 타 시도 이사 의향은 28.2%로 수도권보다 높았으며, 주된 이유는 일자리였다. 여성 청년의 야간 보행 불안 인식은 남성보다 37%포인트 이상 높아 안전 격차 문제도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선택이나 적응 문제를 넘어 구조적 전환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가족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 청년 정책은 이미 현실과 괴리가 크며, 1인 청년을 기본 단위로 한 주거·복지·사회 안전망 재설계 없이는 삶의 질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번아웃과 정신건강 문제 역시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성과 중심 문화, 실패 이후 회복 장치의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 국가통계연구원장은 “청년의 삶의 질은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구조 문제”라며 “이번 보고서가 청년의 삶과 권리 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하고 정책 전환의 근거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